지혜씨는 빠른 90년생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전부 89년생이다.
그럼에도 지혜씨는 나이를 밝혀야 하는 순간이 오면 90년생이라고 대답한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만나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하라고 했고,
그녀는 스스로 정부의 정책을 따르는 것이 사회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절대로 한살이라도 낮춰서 어려보이고 싶다 라거나 80년생이 아닌 90년생에 머물고 싶어서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혜씨는 대한민국 최고 학교 중 하나인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어릴적부터 똑똑하고 공부의 소질이 있음을 알아채고 분당에서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덕분에 삼성전자에 다니는 그녀의 부친의 출퇴근 거리가 몇배는 길어졌지만 이사에 불만은 없었다.
그녀는 대치동에서 초중고 학창시절 12년을 보냈다.
8학군은 중고등학교,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에 '늦게' 가면 적응 못한다는 말을 들은 그녀의 모친은 부랴부랴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다행이도 그녀는 대치동에 차분하게 안착했고 상위권의 학생이었다.
경기여고는 모의고사가 끝나면 건물 1층 벽에 1~50등 등수가 붙였는데 지혜씨는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녀는 공교육 뿐만 아니라 모든 사교육을 착실히 이행하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모범생이었다.
줄이지 않은 교복에 단정한 단발머리로 반장을 도맡는 '착한학생'이라는 칭호를 받는것에 익숙한 지혜씨였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들어가 졸업을 하기전에 이미 알아주는 대기업의 전략기획팀에 입사하였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다른 과 친구들보다는 세상을 빨리 접해보고 싶어서 주저없이 회사에 입사했다.
모든것이 다 지혜씨와 그녀의 모친, 부친의 뜻대로 되고있었다.
결혼만 빼고는.
지혜씨는 연애까지도 순조로웠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 163cm.
너무 이쁘지도 않지만 어느 모임에서나 지혜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정도의 외모.
좋은 학교와 부족함없는 부모님을 만나 단정한 옷차림.
중산층의 집에서 칭찬받고 자란 모범생답게 성격도 모나지 않았다.
중간중간 연애를 쉰 기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항상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다양한 남자를 만나봤다.
같은 모범생과의 남자, 밤마다 연락 안되는 남자, 너무 잘해주는 남자, 잘생긴 남자, 몸 좋은 남자, 못생긴남자, 키큰남자, 자존심 센남자, 자존감 넘치는 남자 등등
그녀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갑이 되어 울면서 매달리는 그들을 내쳐보기도, 반대로 을이 되어 울면서 매달려보기도 했다.
실제로 사귀고 깊은 관계를 맺은것은 3명정도 이지만, 지혜씨 스스로 '남자보는 눈'이 생겼다고 생겼고 실제로 틀린말도 아니었다.
연애를 할수록 결혼을 생각하면서 남자를 골라보면 꼭 아쉬운점이 있었다.
키가 크면 외모가 안좋고, 키랑 외모가 좋으면 학교가 안좋고, 학교까지 좋은데 전문직이 아니고, 학교도 좋고 전문직이면 다시 외모가 별로거나 키가 작거나 아니면 집안이 안좋았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처럼 절대 펴지지않는 굴레의 연속이었다.
30살 초반에 당장 결혼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생각하라는 주변의 말이 들려왔다.
그래서 어느정도는 포기하고 만나보려고하면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혜씨는 어짜피 결혼이라는게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고, '남자쯤은 언제든 만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나마 괜찮은 남자'들은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점찍어둔 남자들은 좀 알고 지내다보면 곁을 주지 않는 지혜씨 곁을 떠났다.
그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카톡 프로필 사진에 웨딩 사진을 올렸다.
지혜씨 스스로도 이대로는 안된다 싶어서 조건중에 1.5개까지는 봐주자 라고 생각했다.
예를들면 전문직에 집안도 좋고 학교도 좋은데 키가 175 미만(1개)이고 얼굴이 보통(0.5개)이면 그냥 만나자 라고 결정했다.
그 예시 속의 174cm 남자가, 3년 만난 지금의 의사 남자친구이다.
서울에 사는 지혜씨는, 의사 남자친구를 보러 일요일에 대구에 와있다.
- 계속 -
너랑 만날 바에야 결정사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