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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만날 바에야 결정사를 간다

너랑 만날 바에야 결정사를 간다(5)

지혜씨는 새로 발령받은 팀이 퍽 마음에 든다. 지혜씨는 공채로 이 회사에 입사하였다. 그녀는 개인적으로는 경영학과 출신답게 마케팅 부서에 발령되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그녀의 뜻과 다르게 지주사의 전략기획팀으로 보내버렸다. 여러 계열사를 지닌 회사의 컨트롤타워인 지주사에 전략을 짜는 전략기획팀에서의 생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막상 막내사원인 지혜씨가 할 일은 크게 없었다. 그저 예전부터 주어진 자료를 보고 읽는게 전부였다. 하루는 아무 일도 맡겨지지 않고 과거 자료를 읽다가 하루가 끝난 적도 있었다. 중요한 일을 하는 시즌이 되면 그녀가 맡은 일은 보고서 오타를 검토하고 인쇄해서 스테이플러를 찍는 일이 전부였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말하는 선배들이 있었지만 지혜씨는 이 정도 일만 맡기는 부서가 싫었다.

지금 그녀는 11층에 경영기획팀으로 발령이 났다. '전략기획', '경영기획'. 이름만 들으면 둘 다 같은 일을 하는 회사처럼 팀처럼 보이지만 지혜씨가 이곳에서 맡은 일은 전체적인 영업 실적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영업 실적을 관리하고 수익성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보다 매일 다운받은 데이터를 가지고 엑셀을 요리조리 돌려 각 부서별로 실적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셈에 강한 지혜씨는 보고서만 읽은 일 보다는 이런 일이 적성에 맞았다.

 

지혜씨가 이 팀의 발령난 건 발령나서 좋은 점은 같은 층에 조차장과 김대리가 같이 있다는 것이다. 둘 다 단 한 번도 같은 일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우연히 부서 회식에서 만나서 친해졌다. 둘 다 말이 많은 타입이었지만 재미있어서 듣게되는 타입이었다. 가끔 둘이 떠드는 걸 보면 일본의 만담을 보는것 같다. 둘다 이전 회사에서 같은 부서에 근무했고 지금 지혜씨 회사로 경력직 이직을 했다고 들었다. 둘에게 따로 둘이 어떻게 친해진거냐고 물었을때, '같이 죽음의 사선을 건넌 사이', '직쏘(영화 쏘우의 악당)과 맞서 서로 등을 나눈 사이'라고 대답하는걸 보니 둘다 사연이 있는듯 했다.

 

조차장과 김대리 둘다 좋게 말하면 상대의 기분을 잘 헤아리는 헤아리고, 나쁘게 말하면 아부꾼을 천성을 타고난듯 했다. 둘 다 이성적인 접근 없이 동료이면서도 친근한 모습을 보여줘서 회사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예전에는 층이 달라 둘 다 셋 다 여유로울 때만 모여서 가끔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곤 했는데, 지금은 같은 층이 되어 아침마다, 특히 한 주에 시작인 월요일날 오전에 모여 커피를 마시는 것이 주요한 루틴이 되었다.

 


지혜씨 메신저에 알람이 울린다. 주차장과 김대리가 같이 있는 채팅방에 알람이 깜빡인다. 싹싹한 김 대리가 지금 당장 커피를 마시러 가야 한다고 몸에 카페인 농도가 떨어져서 죽을 것 같다고 앓는 소리를 해댄다.  셋 다 10분 후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층 아래인10층 탕비실에서 모이기로 했다.

'주말에 뭐 하셨어요?!'

김대리가 누구에게 물어보는지 특정하기 어렵게 허공에 질문을 한다. 김대리는 30대 초반 남자로 강남 8학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으나 수능의 문턱에서 번번히 미끄러져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차장이 항상 이녀석은 외국에서 공부해서 버릇이 없다고 할 때마다 김대리는 군대까지 다 전역하고 간 미국에 갔는데 저는 그런 백정들이랑은 다르다며 너스레를 떨고했다. 미국에서 유학시킬 만큼 집안도 어느 정도 넉넉해 보였다. 지금은 자녀 교육을 다시 시키고 남양주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 지혜씨는 같은 대치동 키즈인 김대리를 이야기를 듣고 있자 하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다.

'주말에 남자친구 만나고 왔어요.. 대구로.'

'그 주지훈님?!'

김대리와 조차장이 동시에 '주지훈'이라는 이름을 꺼낸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각자의 남자친구와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김대리가 동시에 동시에 사진을 보고는 주지훈 닮았다고 하였다. 어느샌가 지혜씨 남자친구의 콜사인은 회사에서 주지훈이 되어 있었다. 지혜 씨가 봤을 때 절대 절대 주지훈이 아니지만 잘생긴 의사선생님 만난다고 시끄럽게 떠드는 둘의 모습이 싫지많은 않았다.

'대구 다녀오신거면 과장님 피곤하시겠어요. 그러면'

조차장이 대답을 한다. 지혜는 아직 대리이지만 올해 진급이 예정이다. 조차장과 김대리는 꼬박꼬박 과장님이라고 해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 왜 왕들이 주변 충신들의 반대에도 간신을 기용했는지 알것같다.

 

조차장은 본인과 마찬가지로 강남에 거주한다. 정확히는 지혜씨 전남친인 지훈 씨 본가 근처인 강남역 리더스원에 바로 옆단지 아파트에 살고있다. 40살 중반인 조차장이지만 아직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뭐 능력은 혼자 살 능력이 충분하지만 예전에 혼자 살았는데 빨래니 반찬이니 밥이니 이런 것 때문에 집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출가하는게 크게 의미 없는 것 같아서 다시 본가로 돌아갔다고 한다. 코로나 때 주식으로 벌어둔 돈으로 딴짓을 안 하고 강남역 근처에 또 오피스텔을 사서 월세를 200만원씩 받으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본인 말로는 월세받기 전부터 컸던 씀씀이가 더 커졌다고 한다. 학교는 평범한 곳을 나왔지만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있다. 또한 독신으로 살려면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따라 엄청난 근육질의 몸, 토닝으로 단련된 뽀얀 피부, 그리고 울써마지로 확립된 판판한 얼굴이 도대체 그가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차장의 모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한다. 지금은 어디서 만났는지 절대 밝혀 밝혀주지 않는 16살 어린 여자친구를 만나 연애를 하고 있다고 김대리와 지혜씨에게만 이야기했었다.

' 주지훈 님 얼굴만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이번에 갔는데 피곤해하더라구요'


지혜씨는 본인을 띄워주는 2명의 말이 좋지만 그래도 티내지 않는다.

' 에이 그래도 닥터잖아요. 주지훈 닮은 닥터라니 물론 우리 과장님이 워낙 뛰어나셔서 더 아깝긴한데.. 과장님 제가 만약에 우리 주지훈 님 안 만나실 거면 제가 만나서 결혼하겠습니다ㅋㅋㅋ'

' 김대리 먼 헛소리야.ㅋㅋㅋ정체성에 혼란오니?'

둘이 낄낄대면서 웃는다. 항상 이렇게 저 두명은 지혜씨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해주는것 같아 뭔가 기특하면서도 고마운 느낌이 든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심지어 가족들 하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사용해야하는것 같은데 이들과 있으면 오히려 에너지를 세이브하는 생각이 든다. 지혜씨는 남자친구때문에 다운된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 

 

'김대리, 근데 넌 결혼 안하고 형처럼 살게? 소개팅 안해?'

이렇게 모일때는 항상 형 취급을 하는 조차장이 화두를 돌려 갑자기 김대리를 공격한다. 조차장은 딱히 할말이 없을때 김대리를 놀렸고, 사람 좋은 김대리도 친한 사람들에게 본인이 대화의 땔감이자 조직의 윤활류가 되는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손으로 박수 칠 수 있나요~ 저도 과장님이나 차장님처럼 동안에다가 능력있으면 결혼 같은거 신경 안쓰고 편하게 혼자 살텐데, 집도 절도 없는 놈이 무슨 결혼인가요~'

김대리는 사실 여기저기 소개팅을 하면서 조건에 맞는 여자를 찾는다는 것을 지혜씨는 알고있었다. 김대리는 물질적인 조건을 크게 따지기 보다 종교와 성격을 엄청 따지는것  같다. 차라리 물질적인 조건은 정량적이어서 명확히 구분이 되는데, 성격은 몇달 알고 지내야 알게되니 마음에 들다가도 성격이 맞지않아 헤어지자고 김대리가 자주해서 김대리도 그의 여자들도 괴로웠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결혼하지마, 형 봐라 얼마나 여유롭냐. 결혼은 수지타산에 맞지않아. 과장님, 그쵸? 과장님도 손익보시니까 아시잖아요. 결혼은 적자에요~'

조차장이 지혜씨에게 동의를 구하는 말을 한다. 지혜씨는 이번에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본인은 한번도 결혼을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 그렇게 살지도 않았는데 벌써 30대 중반을 향해 나아가니 주변에서 시선이 이런가보다 싶다.

 

(나는 결혼을 안하려는게 아닌데..)

항상 이야기할때마다 신나고 에너지를 얻어가는 느낌의 모임이었는데, 오늘은 유달리 에너지가 나가는 느낌이다. 결혼할 나이이며 이제는 무언가 결심을 해야할 차례가 왔다. 이미 놓쳐버린 똥차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혜씨는 지금의 남자친구 동호씨의 마음이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걸까. 결혼할 마음이 있는걸까. 아니 결혼을 안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진짜 좋은걸까. 좋다는 사람이 이렇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대구로 내려가서 벌써 한참동안 안올라오고. 30대 커플이 한달에 한번 하루 만나서 어떤 스킨쉽도 없이 보내는게 이게 사랑이고 애정인걸까.)


조용한 탕비실 벽에 전등 스위치를 노려보면서 혼자 생각을 하고있는 지혜씨. 조차장과 김대리가 말없이 집중하는 지혜씨를 슬그머니 쳐다본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