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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만날 바에야 결정사를 간다

너랑 만날 바에야 결정사를 간다(7)

지혜씨는 핸드폰 수화기를 귀에 대고 발신음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기다린다.

'여보세요?'

'오빠, 내일 대구 갈게, 잠깐이라도 보고 싶네'

'무슨 소리야 갑자기, 내일 온다고?'

동호씨가 지혜씨의 뜬금없는 방문 예고에 당황해한다. 갑자기 왜 오는지, 이미 지난주에 다녀왔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갑자기 온다는 거냐, 이런 적이 없었느냐 등 당황해하는 말을 이어간다.

'자고 가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단호한 지혜씨의 대답에 동호씨가 대답이 없다. 동호씨도 뭔가 생각이 있는 건지, 눈으로 보이지 않고 귀로 들리지 않지만 그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알겠어. 내일 봐. 역으로 데리러 갈게'

전화를 끊은 지혜씨는 서둘러 KTX 앱을 켜고 왕복 티켓을 산다. 급하게 사는 거라 티켓이 있을지 걱정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남아 있다. 내려가는 시간은 1시 도착으로 지혜씨가 원하는 시간에 있지만, 돌아오는 기차가 여의치 않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시간대인 저녁 6~7시는 이미 매진이다. 지혜씨는 4시 30분 기차를 예매한다.

'3시간까지 걸릴 일도 아니야.'라고 지혜씨는 혼잣말한다.

 

'내리실 역은 동대구입니다'

지혜씨는 벌써 동대구에 도착하기 전이다. 보통 KTX를 타면 신기하게 잠이 잘 왔는데 오늘따라 잠도 안 오고, 그렇다고 핸드폰을 하거나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냥 밖의 풍경을 보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간이 흘렀다. 어제는 별것도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다. 일찍 일어난 것치고는 8시간 넘게 잤고 아침에 기운도 개운하다.

사람들의 행렬에 맞춰서 기차에서 내린다. 어떻게 알고 서 있는지 동호씨가 딱 맞게 내리는 곳에 서 있다. 평소 같았으면 서로 엇갈린다는 이유로 매표소 근처 매점에서 만났는데 오늘은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어제 갑작스러운 통화 이후로 지혜씨는 지금 만나는 순간까지 동호씨의 카톡에 싸늘하게 답했다.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지혜씨는 이렇게 나와서 마중 나와 있는 남자친구를 보니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다. 어제 툴툴대긴 했지만 그래도 동호씨에 대한 마음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바로 기분이 풀리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므로 밖으로 비춰지는 텐션은 유지한다.

지혜씨와 동호씨는 평소 가는 동성로가 아닌 다른 곳으로 택시를 타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이동한다. 지혜씨는 일어나서 여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 그래도 동호씨가 지난주처럼 길가에 있는 '아무 데나'로 가지 않고 뭔가를 찾아 둔 듯해서 마음이 더 수그러든다. 이런 페이스라면 뭔가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식당은 2인용 테이블과 4인용 테이블이 6개쯤 있는 작은 구조였다. 이미 점심을 먹은 사람들이 한차례 빠져서인지, 베이지 톤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따뜻한 이탈리아 가정집 분위기가 풍기는 실내 인테리어가 더욱 도드라진다. 옆 테이블의 커플과 하나 떨어진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뭐 먹을래?'

지혜씨는 메뉴판을 보니 허기가 올라온다. 샐러드 하나에 피자와 파스타 하나를 주문하자마자 직원이 식전빵과 물을 가져다준다.

'여기가 맛있다고 하더라고, 인터넷 찾아봤어'

오늘은 에너지가 있는 건지, 지혜씨 눈치를 보는 건지 모르겠는 눈치이다. 아직 기분이 풀린 티를 내면 안 된다. 지혜씨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중요한 대화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침묵을 유지한다. 노력하는 상대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미리 파스타를 삶아 두고 피자를 구워 둔 건지 식전빵이 나온 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음식이 나온다. 지혜씨는 한입 먹기 전에 동호씨에게 말한다.

'맛있어 보여, 식당 찾아줘서 고마워'

'맛있게 먹자'

동호씨는 '왜 갑자기 그녀가 대구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캐묻지 않고 가벼운 신변잡기 이야기만 한다. 그런 동호씨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애써 먹는 속도를 높여 본다. 할 말이 잔뜩 있는데, 할 말을 가득 입에 문 채로 모르는 척하는 것도 참 어렵구나 싶다. 얼추 다 먹을 때쯤, 아직 다 먹지도 않았는데 가게 주인인 것 같은 사람이 와서 물어본다.

'후식은 티라미수랑 커피 있는데 드릴까요?'

'네 그렇게 주세요'

티라미수가 유명하다며 한번 먹어 보자는 동호씨의 말을 들으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둘의 앞에 놓여 있던 식기가 다 사라지고 둘의 시선만 오간다. 3초쯤 침묵이 있었을까, 지혜씨가 드디어 입을 뗀다.

'오빠'

'응? 왜?'

'오빠는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엄청나게 고요한 가운데 생각보다 큰 소리로 나온 지혜씨의 말에 계산대의 주인, 옆옆 테이블의 커플이 순간적으로 지혜씨를 쳐다본다. 동호씨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지혜씨를 쳐다보지만, 설마 했지만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침묵이 긍정으로 읽히지 않게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짓는 동호씨, 대답을 하지 않는다.

'우리 벌써 만난 지 2년째인데 이제 슬슬 결혼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

동호씨는 가만히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애써 아직 나오지 않은 티라미수와 커피를 기다리면서 주방 쪽을 바라본다. 이내 다시 지혜씨를 보면서 대답한다.

'음, 아직 내가 정해진 것도 없고, 개원해야 하는데 모아 둔 돈도 아직 많이 부족해.'

'개원할 때 내가 돈 보태 줄게. 나도 모아 둔 돈 있어'

동호씨는 난처한 표정을 이어간다. 동호씨는 아마 적당히 둘러대고 말아야지 생각하고 말한 것일 텐데, 지혜씨는 오늘 날을 잡고 온 것이기 때문에 끝을 내고 싶다, 어떤 식으로든.

'너도 알다시피 내가 아직 집도 없어, 예전에 모아 둔 돈은 부모님 빚 갚는 데 보탰어. 내가 의사 라이선스가 있는 게 그것뿐이야.'

'오빠한테 예전에 흘리듯이 말하긴 했는데, 내가 성남에 집 사 둔 거 있어, 투룸이긴 한데 시작하는 데 문제없어.'

지혜씨가 이번에도 디펜스를 한다. 여기까지는 지혜씨가 예상했던 바이다.

'음, 아직 내가 배울 게 많아. 아직 개원하고 나면 병원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배우는 중이고. 그동안 대구에 계속 있을 것 같은데 네가 대구로 내려올 것도 아니잖아.'

'.....'

지혜씨는 가만히 듣고 대답을 안 한다. 대답을 못 한다기보다는 어쩜 이렇게 예상한 대로 대답을 할까 싶다.

'...혹시 여자 생겼어?'

'무슨 소리야!'

'아니 그럼 왜 그러는데, 결혼은 결혼이고 오빠가 생각하는 걱정은 결혼하고도 다 상관없는 거야. 결혼하고 한동안 주말부부 해도 되고, 내가 집도 해 오고 개원할 때 필요하면 보탠다니까 왜 그래?'

동호씨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때로는 모든 패를 다 꺼내고 상대 패만 기다리는 갬블러처럼 가만히 있는다. 그래서 그런가 오히려 차분해 보인다.

'그럼 우리 2년만 더 있다 결혼하자, 그때쯤이면 나도..'

'그때 되면 내가 몇 살인데! 나는 아이도 낳고 싶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

지혜씨는 동호씨의 말을 끊고 크지 않은 소리로 버럭 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이내 진심을 내비치는 스스로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져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진다.

'알겠어, 그런데..'

'됐어, 결혼 생각 없잖아 솔직히'

'맞아, 사실 결혼 생각 별로 없어. 지금 일이 즐겁고 대구도 사람도 서울보다 덜 치이고, 기회가 된다면 그냥 대구에 정착해서 살고 싶어.'

지혜씨의 진심에 동호씨도 진심으로 응수한다. 지혜씨는 그의 진심을 들어 본 게 처음이다. 그가 언제 마음을 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의 말이 진심인 것 같다.

'그리고 아예 대구 살겠다고?'

'고향이 여기기도 하고..'

예전에 도축장에 가는 트럭에 타자마자 마지막을 직감하고 우는 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지혜씨도 그 끝이 왔음을 느낀 건지 저 깊은 곳에서 눈물이 올라오지만 어떻게든 참아 본다. 참고 있는데 동호씨가 먼저 말을 한다.

'만약에 네가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자'

'무슨 소리야, 그 말을 어떻게 오빠가 해'

'네가 헤어지고 싶어서 그런 거 아냐? 그럼 결혼할 사람 만나, 그냥'

지혜씨는 의자에 걸어 둔 외투와 핸드백을 집어 들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주인이 티라미수와 커피를 가지고 온다.

'가시는 거면 테이크아웃으로 해 드릴까요?'

가게 주인은 죄지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쥐 죽은 듯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아니요, 계산해 주세요'

동호씨가 작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뒤를 따라 나선다. 지혜씨가 계산하려는 걸 급하게 막아서고서는 본인이 계산한다. 그의 눈빛에서는 '이것마저 지혜씨가 계산하면 너무 미안하다'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갈게'

'데려다줄게'

'됐어, 두 번 안 말할 거니까 혼자 가게 내버려 둬'

'...'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빈 택시가 그 앞을 때맞춰 지나간다. 지혜씨가 손을 흔들자마자 택시가 왔고 지혜씨는 순식간에 택시에 탄다. 동호씨가 지혜씨 가는 택시를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있는 걸 앞만 보고 있는 지혜씨는 모른다.

하염없이 달리는 택시. 지혜씨는 창문 밖을 본다. 서울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작고 한산한 동네.

'하, 4시 반 기차인데 지금 3시 반이네. 1시간 동안 뭐 하지. 단 게 먹고 싶어. 아까 그 티라미수 맛있어 보였는데...'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