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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만날 바에야 결정사를 간다

너랑 만날 바에야 결정사를 간다(9)

"뭐, 헤어졌다고?"

"조용히 말해, 엄마. 아빠 들어."

싱크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한 주방에 잠시 큰 소리가 오간다. 지혜 씨는 퇴근하고 늦은 저녁을 먹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녀의 어머니가 두 번씩 저녁을 차리게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8시 가까워 저녁을 먹는 와중이었고, 싱크대에 서 있는 어머니에게 폭탄 고백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지혜 씨는 이미 마음이 어느 정도 누그러들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막상 과년한 딸의 사윗감이 사라져버리니 놀란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의사 사위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종종 했을 뿐만 아니라, 모르긴 몰라도 그녀의 아버지 또한 내심 사윗감으로 인정하는 눈치가 지혜 씨는 느껴졌었다.

"왜? 왜 헤어진 건데? 여자 생겼대?"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결혼할 마음 없대"라는 대답을 쥐 죽은 목소리로 하는 지혜 씨, 그런 그녀의 모습을 어머니는 짠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지혜 씨의 어머니는 위로의 말을 이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면서 결혼을 미루고 멀쩡한 여자들 혼기 다 날리는 그런 놈들이 항상 있다. 비록 조금 늦게 알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다행이다. 더 늦어졌으면 더 안 좋았을 거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그놈 그거 대구 간다고 했을 때 느낌이 쎄했는데 이렇게 될 거 같더라'라는 말을 이어간다.

지혜 씨는 속으로 '그렇게 미래를 잘 아는 사람이 아까는 왜 그렇게 놀랐냐'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지혜 씨 어머니의 말은 사실 그간 본인도 알게 모르게 생각했던 내용을 음성언어로 바꾸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말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한다.

'지혜야, 너 선 봐라'

'무슨 소리야 엄마'

지혜 씨의 어머니는 아침 수영을 같이 하는 같은 상급반 아주머니 딸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아주머니는 지혜 씨에게 '영자 아줌마'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엄마 친구였다. 영자 아줌마는 매일 다른 수영복으로 바꿔 입는 걸로 유명한데 그녀의 어머니가 2년 동안 초급반부터 상급반까지 같이 승급하며 본 수영복이 어림잡아 50벌 이상이라고 했다. 영자 아줌마는 수영장에서도 향수를 뿌리는 건지 그녀의 뒤에서 수영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좋은 향이 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영자 아줌마는 샤워 바구니도 거의 사과 상자만 한 걸 들고 다니며 바르는 로션만 10개는 되는 듯하며, 지혜 씨 어머니 말에 의하면 왼쪽 팔 오른쪽 팔에 바르는 로션 종류가 서로 다르다고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꾸미고 가꾸는 영자 아줌마는 온갖 로션을 말하고 향수를 뽐내며 자기 자랑을 하지만 막상 자식 이야기를 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혹시 자식이 아픈 건 아닌지 혹 다른 사연이 있어서라고 생각해 다들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 영자 아주머니의 딸이 얼마 전에 결혼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영자 아주머니 딸은 어디 내놓고 자랑하기 힘든 그저 그런 지방대를 나와서 가산디지털단지에나 있을 법한 IT 중소기업을 다녔다고 한다. 영자 아줌마는 이런 식으로는 본인의 딸이 어디서 허접한 남자를 데려올 것 같다는 걱정을 하여 30살도 안 된 딸을 결혼정보회사에 가입시켰다.

영자 아줌마의 메타인지와 자녀 전략이 빛을 발해서인지 그녀의 딸은 결정사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쁘장한 외모와 영자 아줌마의 남편이 일궈둔 자산, 그리고 20대를 선호하는 30대 중후반 남자들의 수요로 인해서, 서른도 안 된 그 여자는 결정사에서 소개해준 다섯 번째 만난 3호선 교대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개업한 변호사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혜 씨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영자 아줌마를 닮아 어릴 적부터 꾸며지고 가꿔진 외모로 학교도 직장도 후지지만 전문직 남자 물어서 결혼했다고 한다. 그런 모지리도 전문직하고 결혼하는데 더 이상 남자 찾아다니느라 고생하지 말고 그냥 결혼정보회사에 바로 등록하자고 한다.

지혜 씨는 엊그제 헤어진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 말을 두고두고 생각해 보니 줄줄이 맞는 이야기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학교며 직장이며 집안도 꿇리는 게 없고, 나이도 서른은 넘었지만 아직이고 한데,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여기저기 소개팅을 찾아서 서로 잘 맞는지 확인하고 결혼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최소 두세 달은 걸리는데 의지가 있는 사람들끼리 조건 다 맞춰진 채로 결혼하면 얼마나 편하겠나 생각한다.

'결혼정보회사 비싼 거 아냐...?'

'엄마가 반 대줄 테니까 이번 주에 당장 같이 가서 등록해'

반을 내준다고 하더라도 얼마인지 모르는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게 사랑인데 그 사랑마저도 돈으로 어느 정도 판을 깔아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어릴 때는 그래도 자만추니 서로 마음이 맞는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는데 이제는 조건을 찾는 것도 모자라 뚜쟁이까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약간 서글퍼진다. 그래도 이렇게 하기로 결정한 거 마음을 굳게 먹어본다.

'반 내주기로 한 거다 엄마'

'알겠다니까, 식탁이나 닦아'

  • 계속 -